
지난 7월30일부터 8월5일까지 광화문 가든플레이스에서는 2009 디자인 영화제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제에서는 게리 허스트윗(Gary Hustwit) 감독의 'Helvetica'(이하 헬베티카) 와 'Objectified' 의 상영이 있었는데요.
당초 예상보다 더 좋은 관객들의 반응 덕에 원래 계획된 영화제 기간보다 연장해서 상영을 했음에도 미처 표를 못구하고 상영관까지 왔다가도 돌아간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별다른 홍보도 없을뿐 아니라, 휴가를 맞이한 국내외 블록버스터들의 대개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매순위 10위권 내에 드는(7월 넷째주 기준) 기염을 토한 헬베티카.
과연 어떤 영화길래 이런 기현상(?)을 연출하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디자인 영화제가 진행중인 광화문 가든플레이스의 전경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옆에 위치하고 있는 총 3층으로 이루어진 복합공간으로, 영화가 상영된 미로스페이스는 2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브로셔와 티켓입니다.
여느 브로셔들처럼 간단한 영화소개가 담겨있더군요.
1. 영화 이야기
영화는 헬베티카 라는 폰트의 삶을 스크린에 풀어놓습니다.
폰트라는 무생물 아니 어찌보면 사물이라 하기에도 눈으로 보이는 형태가 없는 이 무언가에게 '삶' 이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어색할수도 있지만, 그만큼 헬베티카는 50년 이라는 그동안의 생애동안 전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어왔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보고, 만지고, 선택하는 모든 것들에 헬베티카는 존재하고 있고 우리가 숨쉬는 공기만큼이나 바로 손닿는곳에 늘 놓여있는 것이 헬베티카입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영화는 한눈에 보기에는 폰트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뉴욕, 베를린, 취리히 등을 오가며 도시의 일상을 담고 있는것 처럼 보입니다.
영화는 우리가 자주 입는 AA(American Apparel)의 간판과 택에서부터 뉴욕 지하철의 안내판까지 다양하게 우리 생활에 녹아있는 헬베티카라는 폰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뉴욕에서부터 암스테르담, 스위스까지 다양한 나라의 풍경과 그들의 생활에 녹아든 헬베티카를 찾아보며 디자인에 대해 모르고 헬베티카 라는 폰트를 몰라도 '아, 저게 그 폰트였어?' 하고 영화 속에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계속해서 '왜? 왜 헬베티카인가?' 라는 끝없는 물음을 던지고 또 여기에 답합니다.
'확신이 서지 않을 땐 헬베티카를 사용해라'
'헬베티카를 쓴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맥도날드에 가는 것과 같다'
등 다양한 디자이너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왜 헬베티카를 쓰는지, 디자인에 있어 헬베티카는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헬베티카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영화는 헬베티카에 대해 끝없이 물음을 던지지만 딱 정해진 결론을 맺지는 않습니다.
영화 속의 디자이너들도 헬베티카의 파급력과 가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누군가는 헬베티카를 극찬하기도 또 다른 누군가는 비판하기도 합니다.
결국 영화는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처럼, 기승전결이라는 정해진 코스에 따라 우리에게 기대했던 재미를 주기보다는 말그래도 헬베티카의 '이야기' 를 들려주며 영화를 끝냅니다.
결국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영화를 보는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하지만 굳이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을뿐 이미 헬베티카는 우리의 일상이고, 우리의 모습이었으니까요.
폰트 이야기 하나로 80분이라는 런타임을 어떻게 채울까 궁금했는데, 어느새 보다보니 훌쩍 80분이 지나가더군요.
영화관에 넘치는 블록버스터들보다는 조금은 편하고 잔잔하게 다가오는 내용이라 영화가 끝나면 '어, 끝난거야?' 하고 느끼실수도 있지만 그런 부담없이 다가오는 내용이 또 매력입니다.
2. 생활속 헬베티카 이야기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헬베티카를 그들의 로고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를 보고 '헬베티카는 세계화의 폰트이다', '헬베티카는 베트남전의 폰트이자, 이라크전의 폰트이다' 라고 하죠.
기업에게 있어 CI나 BI의 중요성과 가치는 엄청나다라는 사실을 봤을때 헬베티카가 얼마나 또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재밌는것은 Arial의 마이크로소프트도 로고에 헬베티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군요.
잘 사용된 타이포그래피는 그 어떤 그래픽디자인보다 심플하면서도 아름답죠.

AA(Americal Apparel)의 헬베티카 티셔츠 입니다.
새련된 폰트 하나만으로도 디자인이 완성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Hello, MSP.'라고 한번 써봤습니다.)

다양한 타이프그래피(Typography)를 디자인에 자주 활용하는 일본의 그라니프(Graniph)의 티셔츠 입니다.
그라니프는 헬베티카의 일본개봉시 스폰서로 활동할뿐 아니라, 개봉에 맞춰 헬베티카 헌정티셔츠도 제작하였습니다.
역시나 디자인으로 뛰어난 회사답게 헬베티카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군요.
이처럼 우리가 입고 보고 만지는 모든 것에 헬베티카는 녹아들어있습니다.
3. 한글폰트 이야기

이제 헬베티카 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를 괴롭혔던 것은 영화의 자막이었습니다.
번역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폰트 처리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현재 한국에 상영중인 외화들은 1992년 영화자막제작업체인 승보자막에서 제작한 '승보체'를 계속해서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이 승보체도 전 마음에 들어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번 헬베티카 상영시 사용한 폰트는 바탕체는 이건 뭔가 싶더군요.
글꼴을 주제로한 영화에서 이런 테러라니..
계속해서 화면에 녹아들지 못하고 붕떠있던 자막은 영화를 보는내내 저를 괴롭혔습니다.
제가 유난히 예민했던걸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지만, 갈수록 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높아지고 있는 사용자들은 알게모르게 폰트에 대한 안목이 높아져있습니다.
조금만 폰트를 잘못써도 바로 사용자들 입에서는 촌스럽다라는 말이 나오죠.
그럼 현재 한국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한글 폰트는 무엇일까요?
바탕 : 마이크로소프트 스튜던트 파트너
굴림 : 마이크로소프트 스튜던트 파트너
돋움 : 마이크로소프트 스튜던트 파트너
아마 여러분께서 인터넷 서핑을 하실때면 이 폰트들을 가장 많이 보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요즘은 싸이월드, 네이버 등의 포탈사이트들을 주축으로 해서 웹폰트가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범용적으로 구성되는 사이트들은 기본 폰트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본 폰트들을 이용해서 사이트를 구성해도 사이트 내용의 이해는 전혀 무리가 없을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갈수록 높아지는 사용자들의 안목을 고려했을때 기본 폰트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서 많은 디자이너들은 플래쉬를 이용하거나 혹은 텍스트를 이미지 처리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웹사이트에 한글을 구현해왔습니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막기 위해서는 OS차원에서 기본적으로 지원해주는 폰트가 다양해지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기본적으로 OS차원에서 제공해주는 굴림, 바탕, 돋움 등이 사용자들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럼 한번 OS의 폰트시스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저는 Windows와 Mac OS를 둘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 OS의 폰트 표시방법에 대해서는 사용자의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고 있습니다.
Mac OS의 Anti-aliasing이 적용된 부드러운 폰트를 선호하는 사용자가 있는가 하면,
Windows의 Clear-type 폰트가 가시성 면이나 눈의 피로면에서 Mac OS의 그것보다 낫다고 하는 사용자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좀더 부드럽고 보기좋은 Mac OS의 폰트를 선호하는 편이나,
로컬리제이션 부분에 있어서는 Windows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Mac OS에서의 한글지원 문제는 고질적으로 지적되던 문제이죠.
현재 Leopard 이후로 11,172자를 지원하는등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현재도 많은 문자열들이 제대로 표시되지 못하는 문제가 지원되고 있죠.
Windows의 경우는 그나마 긍정적인 편입니다.
꾸준한 로컬리제이션 덕택에 표기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지적되던 폰트 디자인 문제도 비스타 이후 맑은고딕이 나오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죠.
맑은고딕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MS Powerpoint를 이용해 프리젠테이션을 한번이라도 작성해본 분이라면 크게 느끼실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굴림, 바탕, 돋움 등의 폰트의 가장 큰 문제는 본문용으로 작게 표기될때보다 크게 표기될때 더 두드러지게 마련이죠.
Windows, Mac OS 모두 장단을 가지고 있고 있기에 어느 것이 낫다고 딱 말하기는 힘들지만 결론적으로 양 OS 모두에서 몇몇 문제점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그래왔던것처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양사 모두 계속적으로 좀더 노력해서 사용자들이 만족할수 있는 결과를 내놓을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OS 상에서 완벽한 해결이 안되기 때문에, 웹 상에도 주요 포탈사이트를 주축으로 해서 한글폰트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폰트의 개발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네이버나 다음은 폰트를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데요, 이런 움직임은 사용자들에게 폰트선택의 권리뿐 아니라 좀더 쾌적하게 컴퓨터를 사용할수 있는 권리 또한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다음, 한국 포탈시장을 양분하는 이 포탈사이트의 영향력으로 이미 위 폰트들의 보급율은 상당한 수준에 달하고 있고 디자이너 혹은 개발자들로 하여금 좀 더 선택의 폭을 넓힐수 있게 해 숨통을 트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OS차원에서 이런 폰트개발 및 배포가 이루어진다면 그 영향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현재 한국에는 10여개 이상의 폰트제작회사들이 폰트개발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산돌광수체 등의 '산돌커뮤니케이션'과 윤고딕 등의 '윤디자인' 말고는 많아봐야 서너개의 회사가 존재할줄 알았는데, 생각외로 많은 업체들이 폰트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랬습니다.
그만큼 폰트에 대해 갈수록 민감해지는 사용자들의 욕구가 폰트시장에 수요로써 작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예전처럼 폰트가 디자이너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는데요.
누구나 포토샵을 이용해 자신의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꾸미는 시대에서 예전처럼 무조건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어진 폰트를 '수용' 하던 것을 벗어나 스스로 원하는 폰트를 '선택' 할 수 있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폰트 시장은 더욱더 많은 사용자들의 요구와 높아지는 안목에 부딪히게 될 것이고, 또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적으로 수반될 것입니다.
4. To use or not to use

앞서 살펴보았듯이 헬베티카는 이제 햄릿처럼 'To use or not to use'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 생활에 너무나 녹아들어버린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50돌을 넘긴 헬베티카가 계속 현재의 지위를 계속할것이냐는 물음에,
저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럴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은 그동안 인정받아온 헬베티카의 가치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과 더불어 사람들은 뭔가 혁신적인 새로운 것이 나오더라도 '좋은 새것' 보다는 '편한 옛것' 을 좀 더 선호한다는 믿음에서죠. 물론 헬베티카를 대신할 '좋은 새것' 이 당분간은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제 개인적 예상도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앞에 '아마도' 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Arial' 의 뜨거운 추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는 파급력과 더불어 언제부터인가 맥에서도 Arial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Arial이 헬베티카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위치를 꾸준히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그럼 이제 우리네 현실로 돌아와, 과연 한글폰트에서 헬베티카와 견줄수 있는 폰트는 무엇이 될까요?
헬베티카처럼 문제없이 두루 사용되고 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폰트가 한글폰트에서도 시급한 상황입니다.
Arial이 그랬던것처럼, 아니 Arial보다 더욱더 긍정적인 방법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수 있는 한글폰트가 그 주체가 정부가 되었든, 혹은 Windows같은 OS나 네이버같은 포탈이 되었든 어서 등장하길 바라는 바입니다.
한국의 헬베티카가 될 한글폰트의 등장을 절실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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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어요 가끔 봐야겠어요^.~ 반스 포스팅도 멋지고 히히
원기 땡큐!
너도 어서 맥북의 승리자가 되렴, 화이팅!
이거시야말로 첫블로그포스팅 과제 최우수작... 역시 Mr. Helvetica!!!!!!!!!!!!!! 넌 최고야..
전 그냥 나부랭이.
희제형이야말로 킹오브더간지유아더베스트.
보고싶네요 형.
이것이 원본이군요, 헬베티카 초 재밌게 들었어요!
역시 오빠는 능력자........ > <
의리 넘치는 다솜솜 안뇽.
재밌게 들었다니 정말 기쁘구나.
나는 능력자 말고 그냥 찌질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이것 저것 읽어보고 있던 참이었어요. ^^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심심할때마다 와서 보는데, 이 글은 열번을 넘게 읽어도 명작. 아아아. 추석 연휴 오전이 상콤하네요.
헐.. 거짓말.